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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발견 이야기 – 플라스틱을 먹는 세균

지속가능한 과학기술

by smart-universe 2025. 10. 1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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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일본 오사카 인근의 사카이(Sakai) 시.
조용한 산업 단지 한켠에 위치한 한 재활용 공장에서
과학자들이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플라스틱 병이 일부만 부식된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이죠.
그것은 일반적인 물리적 손상이나 열 변형과는 달랐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먹어치운 것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깎여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플라스틱은 인간이 만든 ‘불멸의 물질’ 로 여겨졌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쓰레기.
그런데 이 현상은, 그 불멸의 신화를 흔들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일본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발견 이야기 – 플라스틱을 먹는 세균

우연처럼 시작된 관찰

 

이 연구는 일본 교토공업대학의 요시다 슈스케(Yoshida Shosuke) 박사팀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은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 중에 존재하는
자연 분해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죠.

어느 날,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PET 플라스틱 조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플라스틱 표면에 미세한 틈과 구멍이 생기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그 틈 주변엔 작은 균류 비슷한 생명체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그 표면에서 채취한 시료를 배양하기 시작했고,
며칠 후, 투명한 플라스틱 조각이 점점 더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실제로 플라스틱을 ‘먹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죠.
그 순간, 연구자들은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새로운 생명체,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

 

DNA 분석 결과, 이 미생물은 기존에 알려진 박테리아와 달랐습니다.
새로운 종으로 분류되어야 할 만큼 특이한 유전자 구성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연구팀은 이 생명체를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Ideonella sakaiensis)라 명명했습니다.
‘사카이’는 발견된 도시의 이름에서,
‘이데오넬라’는 속(genus)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미생물은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표면에 달라붙어
효소를 분비했습니다.
그 효소가 바로 PETase였죠.
이 효소는 플라스틱 사슬을 분해해
작은 조각(MHET)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세포 내로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해, 플라스틱을 ‘먹고 소화하는’ 최초의 생명체가 발견된 것입니다.

 

실험으로 밝혀낸 놀라운 능력

 

이 발견이 발표된 뒤, 전 세계 연구소들은
이 미생물을 검증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는 상온에서도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분해는 고온, 강산, 자외선 등
극한 조건이 필요하지만,
이 미생물은 30도 내외의 환경에서도
서서히 플라스틱을 녹여냈습니다.

심지어 효소만 따로 추출해 실험했을 때도
플라스틱 표면이 점점 부드러워지고 투명도가 떨어졌습니다.
즉, 미생물 자체뿐 아니라 PETase 단백질이
분해 반응의 주역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자연이 보여준 진화의 속도

 

더 흥미로운 점은 이 효소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PET이라는 인공물질이 세상에 등장한 건 고작 70여 년 전.
그런데 이 미생물은 이미 그 구조를 인식하고
효소로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연구자들은 PETase의 입체 구조를 분석한 결과,
이 효소가 식물의 왁스층을 분해하는 카티나제(Cutinase) 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즉, 원래 식물 잎의 보호막을 분해하던 효소가
새로운 환경, 즉 플라스틱 표면에 적응하며
새로운 기능을 진화시킨 것입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변화는
자연의 복원력이 얼마나 빠르고 유연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연구가 던진 새로운 질문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발견은 단순히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있다”는 뉴스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인류가 오랫동안 굳게 믿어온 명제,
“플라스틱은 결코 자연적으로 썩지 않는다” 는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한 첫 번째 과학적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발견이 진정으로 특별했던 이유는,
기존의 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인류가 만든 인공물질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적응의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근본적인 화두였습니다.

 

과학자들의 시선: ‘분해’에서 ‘활용’으로

 

이 발견 이후, 전 세계의 연구소들은
‘분해’라는 목표를 넘어 ‘활용’의 단계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PETase가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다면,
그 부산물을 새로운 산업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이 바로 Microbial Upcycling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PETase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분자 구조를 3차원적으로 재설계하거나,
다른 미생물의 효소와 융합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영국 포츠머스대 연구팀은
PETase와 MHETase를 결합해
‘슈퍼 효소(Super Enzyme)’ 를 개발했습니다.
이 효소는 기존 PETase보다 분해 속도가 6배 이상 빨라,
불과 24시간 만에 PET병을 완전히 분해했습니다.
미국 NREL(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은
이 효소를 산업용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대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또한 일부 연구팀은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유전자를
다른 박테리아나 효모(yeast)에 이식해
효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물공학적 효소 공장(Bio-Enzyme Factory)’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즉, 자연이 만든 단 하나의 박테리아가
이제는 인류가 만들어가는 거대한 바이오 순환 산업의 출발점이 된 셈입니다.

 

작은 세포가 바꾼 지구의 미래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등장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류가 만든 가장 단단한 물질을
자연은 단 한 세대 만에 분해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은 “자연은 항상 균형을 되찾는다”는 사실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 미생물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에너지나 원료로 바꾸는
바이오리사이클 산업의 핵심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더 나아가, 이 발견은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리는 오랫동안 플라스틱 오염을 인간의 실수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자연은 그 실수를 통해
새로운 진화의 기회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는 작고 단순한 세균이지만,
그 존재는 지구 생태계 전체에
‘회복의 가능성’ 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그 신호를 이해하고,
자연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플라스틱을 먹는 세균은
지구의 작은 구석에서 시작된 기적이지만,
그 울림은 인류의 미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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