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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분해되지 않는 진짜 이유 – 분자 구조의 비밀

지속가능한 과학기술

by smart-universe 2025. 10. 1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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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편리한 소재이자,
가장 골치 아픈 물질입니다.
가볍고, 단단하며, 습기와 열에도 강해
생활 전반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죠.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동시에 ‘분해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왜 플라스틱은 이렇게 끈질기게 남아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분자 구조에 숨어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분해되지 않는 진짜 이유 – 분자 구조의 비밀

플라스틱은 “고분자 사슬”로 이루어진 괴물

 

플라스틱(Plastic)은 ‘변형 가능한 물질’을 뜻합니다.
그 본질은 ‘고분자(高分子, Polymer)’입니다.
즉, 수천 개의 작은 분자(단량체, monomer)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분자를 이루는 구조죠.

이 사슬을 이루는 결합이 바로 공유결합(Covalent Bond)입니다.
공유결합은 자연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학 결합 중 하나로,
한 번 형성되면 외부의 자극으로는 거의 끊어지지 않습니다.
나무, 음식물, 종이 같은 천연물질은
산소나 수분에 의해 쉽게 분해되지만,
플라스틱의 공유결합은 열, 자외선, 미생물 효소에도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비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조금씩 잘게 부서질 뿐,
화학적으로는 여전히 그대로 남는 상태로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 동안 환경 속에 존재하게 됩니다.

 

PET, PE, PP –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의 화학 구조

 

가장 흔한 플라스틱 종류를 살펴보면
‘왜 분해가 어려운지’ 한눈에 보입니다.

  •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리콜이 결합해 만들어진 폴리에스터.
    에스터 결합이 매우 안정적이며,
    고분자 사슬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어 효소가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 PE(폴리에틸렌) :
    단순한 탄소-수소 사슬 구조로 되어 있으며,
    물에 녹지 않고 화학적으로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미생물이 분해 효소를 붙일 수 있는 ‘지점’이 부족합니다.
  • PP(폴리프로필렌) :
    사슬 구조가 비대칭적이라 물리적 강도가 높고,
    열에 잘 변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자연계 효소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죠.

이런 이유로, 플라스틱은 자연의 미생물이 인식하지 못하는
‘비자연적 물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수백만 년 동안 나무, 단백질, 지방 같은
천연 폴리머를 분해하는 법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분해가 느린 이유 ① – 결정성과 비결정성의 함정

 

플라스틱의 분해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결정성(Crystallinity)입니다.

플라스틱 사슬이 규칙적으로 정렬된 영역을 ‘결정 영역’,
엉켜 있는 부분을 ‘비결정 영역’이라 부르는데,
결정성이 높을수록 분해가 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PET는 결정성 비율이 높습니다.
이 말은 효소가 플라스틱 안으로 침투할 틈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결정 구조 속의 분자들은 마치 벽돌처럼 빽빽하게 쌓여 있어
효소가 결합 부위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미생물이 플라스틱 표면에 붙는다 해도,
내부로 침투해 결합을 끊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죠.

 

분해가 느린 이유 ② – 소수성(Hydrophobicity)의 벽

 

또 하나의 큰 이유는 플라스틱의 소수성(hydrophobicity)입니다.
플라스틱은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강해서
효소나 미생물이 달라붙기가 어렵습니다.
효소는 대부분 수용성 단백질이기 때문에
물이 닿지 않는 표면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결국 플라스틱 표면은 미생물에게 ‘미끄러운 방패막’이 되어
효소가 접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분해는 단순한 화학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접촉’을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의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분해가 느린 이유 ③ – 효소 인식 부위의 부재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하려면
먼저 플라스틱을 ‘인식’ 해야 합니다.
효소는 특정 분자 구조를 알아보고 반응을 일으키는데,
플라스틱에는 자연계 물질과 같은 인식 부위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생물은
플라스틱을 ‘먹이’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효소를 분비하지 않거나,
분비하더라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플라스틱이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고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PETase는 분해가 가능할까?

 

이제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PETase 효소는
어떻게 이 불가능한 일을 해낸 걸까요?

비밀은 효소의 입체 구조에 있습니다.
PETase는 일반 효소보다 활성 부위(active site)가 더 넓고 유연합니다.
이 구조 덕분에, 효소가 플라스틱 표면의 사슬을 물고
에스터 결합을 정확히 끊을 수 있습니다.
즉, 기존 미생물이 인식하지 못했던 구조를
새롭게 ‘열어본’ 효소라고 볼 수 있죠.

결국 PETase는 인류가 만든 인공물질에
자연이 적응하고 진화한 최초의 효소 중 하나입니다.
이 사실은 자연이 얼마나 놀라운 복원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플라스틱이 썩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단단해서”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화학적 안정성, 구조적 밀집, 효소 인식 결핍 등 복합적인 과학적 요인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PETase의 발견은 그 벽이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플라스틱조차 분해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인간이 그 과정을 이해하고,
더 빠르고 효율적인 Microbial Upcycling 기술로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만든 물질이 다시 생명 순환의 일부로 돌아오는 순간,
지구의 오염은 줄어들고, 자원은 다시 순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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