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저온 열 활용 기술 포럼’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에너지를 생산하느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잃고 있는지 절감했다.
전기를 만들고, 철을 녹이고, 데이터를 처리할 때마다
수많은 열이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이 열은 대부분 60~100℃ 이하의 저온 열이다.
사람에게는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과학자들은
그 안에 도시 하나를 움직일 만한 에너지 잠재력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열의 약 50%가 활용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
특히 제철소, 시멘트 공장, 화력발전소, 데이터센터 같은 시설에서는
전체 에너지의 절반 가까이가 단순 냉각수 형태로 배출된다.
한국만 보더라도
연간 산업 폐열량이 약 14조 kcal
이는 서울시 전체 난방 수요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다.
즉, 우리가 버리는 열만 잘 모아도
겨울 한 철 난방용 천연가스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 폐열이 대부분 저온(低溫) 이라는 점이다.
보통 발전소 터빈이나 공장 용광로처럼 400℃ 이상의 고온 열은
증기 터빈으로 전환이 가능하지만,
도시나 산업 현장에서 버려지는 열은 대부분 60~150℃ 수준이다.
이 정도 온도로는 기존 발전기 터빈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저온 열은 활용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 고정관념을 깬 것이 바로 열전 발전(Thermoelectric Generation, TEG) 기술이다.
TEG는 움직이는 부품도, 회전하는 터빈도 필요 없다.
온도 차이만 있으면 그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전자 이동이 발생한다.
이 현상을 바로 ‘제백 효과(Seebeck Effect)’라 부른다.
예를 들어, 공장 배기구 한쪽은 뜨겁고,
바깥 공기는 차갑다.
이 두 면을 서로 다른 반도체로 연결하면
온도 차에 따라 전자가 고온 쪽에서 저온 쪽으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즉, 공기와 금속판의 온도 차만으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가 되는 셈이다.
이 방식은 구조가 단순하고, 유지보수가 거의 필요 없다.
진동이나 회전이 없기 때문에 소음도 없고,
내구성도 높다.
그래서 ‘무소음 발전기(Silent Generator)’,
혹은 ‘고체 발전기(Solid-State Generator)’ 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나노기술이 더해져 효율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그래핀(graphene), 텔루륨화비스무트(Bi₂Te₃), 실리콘 나노와이어 같은 신소재를 적용해
기존 대비 3~5배 높은 전력 변환 효율(ZT값 2.5 이상) 을 달성했다.
이제는 100℃ 이하의 폐열로도 실제 전력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기술은 다양한 산업에 응용되고 있다.
이처럼 TEG는 “열을 버리지 않는 기술”의 핵심이자,
기계적 구조 없이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가장 단순한 발전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결국 폐열을 다시 에너지로 돌려주는 것은
“버려진 에너지를 되살리는 순환의 과학”이며,
TEG는 그 시작점에 서 있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도시는 거대한 열 저장고다.
하수, 지하철, 건물 배기 시스템 등에서
끊임없이 따뜻한 열이 흘러나온다.
서울의 난지 물재생센터는
하수 속 열을 회수해 인근 마곡지구의 냉난방에 공급하고 있다.
이 시스템 하나로 연간 이산화탄소 1만 톤을 줄이고,
약 8,000세대의 에너지를 대체하고 있다.
지하철에서도 폐열 활용이 시작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환기구 열 회수 시스템을 도입해,
겨울에는 외부 공기 예열, 여름에는 냉방 효율 향상에 활용하고 있다.
하수·지하철·데이터센터 등
도시의 ‘보이지 않는 열’이 제2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가 되면서 데이터센터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들이 쓰는 전력의 30% 이상이 냉각용 에너지다.
즉, 컴퓨터를 식히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다시 버려진다.
이제 이 열이 도시의 에너지원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핀란드 데이터센터에서
서버 냉각수로 생긴 폐열을 인근 주택의 지열난방 시스템에 공급하고 있다.
그 결과, 약 25만 가구의 난방을
추가 연료 없이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NHN 등이
데이터센터 폐열 회수 기술을 적용해
강원·전남 지역의 스마트팜과 공공시설 난방에 활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폐열 활용 기술의 철학은 단순하다.
“모든 에너지는 형태만 다를 뿐, 버려질 이유가 없다.”
고온은 전기로, 저온은 난방으로,
극저온은 냉각으로 되돌리는 기술이
바로 순환형 에너지 사회(Circular Energy Society) 의 핵심이다.
이 기술이 본격 상용화되면
산업단지, 병원,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같은
도시 인프라 전체가 연결된 ‘열 순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 시설의 폐열은 다른 구역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 결과, 도시의 에너지 자립률이 높아지고,
탄소 배출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 혁명
지금까지의 에너지 산업은
새로운 자원을 찾는 경쟁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에너지 산업은
기존 자원을 얼마나 지혜롭게 다시 쓰는가의 경쟁이 될 것이다.
폐열은 더 이상 버려지는 부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혈관 속을 도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이 기술이 완전히 자리 잡는 날,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자신의 열을 순환시키며 살아가는,
생명체 같은 도시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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